안녕하세요,
하고 싶은게 많은 과대 🤓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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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벌써 1월 30일이에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의 1월은 어떠셨나요?
시작이 좋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에겐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까요.
올 한 해는 부디 따뜻하고, 행복한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한해는 어떤 한 해였나요?
되돌아보면 다 좋은 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습니다.
2023년은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겐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여러모로 뜻 깊은 해였어요.
저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2023년은 2022년 대선을 치루고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1년 내내 대통령으로 있었던 첫 한해였어요.
한 나라에 대통령이 바뀌니까 여러 제도가 바뀌고, 그렇다 보니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항을 끼치기도 했죠.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보던 뉴스에 새로운 소식들이 등장해서
자연스럽게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몇 친구들이 민감한 얘기는 하지 말자면서
말을 아끼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정치 얘기는 민감하니까 숨기고, 덮고, 조용히 지나가야 하는 건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인데?’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저는 민감한 얘기일 수록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이상 민감한 얘기가 되지 않게, 모두가 건강하게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될 때까지요.
뭐라구요?
그래도 이건 인류학 뉴스레터인데 정치 얘기는 맞지 않다구요?
아니에요!
인류학에는 수 많은 하위 학문이 있다는 건 이제 아시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정치 인류학’이랍니다.
눈치 채셨죠?
이번에 제가 소개해드릴 인류학은 ‘정치 인류학’이랍니다.
그럼 정치 인류학의 역사부터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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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류학의 역사
정치 인류학의 시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근대 학문으로서의 인류학이 탄생한 19세기에 정치 인류학도 함께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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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에드워드 에반 에반스 프리차드다.
현대 정치 인류학은 1940년 메이어 포르테스(Meyer Fortes)와 에드워드 에반 에반스 프리차드(Sir Edward Evan Evans-Pritchard)의 저서 <아프리카의 정치체제(African Political Systems)>로부터 시작됩니다!
포르테스와 프리차드는 정치 인류학이란 여러 정치제도 속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확인하고,
각각의 정치제도가 다른 사회 조직과 맺는 상호의존성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에드먼드 리치(Edmund Leach)는 이를 비판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유럽 식민 행정의 지배 속에 놓여있었음에도,
저자들은 정치적 삶을 분석하면서 각 사회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식민주의의 맥락을 간과했다는 것이 비판의 논점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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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는 저서 <버마 고산지대의 정치체제>에서
각 사회는 결코 정적이고 평형상태에 머무르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고 얘기 했습니다.
이후에 정치 인류학의 발전의 시작에는 막스 글룩크만(Mac Gluckman)이 있어요!
글룩크만의 관점에서 갈등은,
사회적 행위자들 간의 결속을 확립함으로써 정치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에요.
심지어 글룩크만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갈등이 필요하고,
갈등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서를 구성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런 학문적 흐름 속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정치 인류학은 인류학 내에서 매우 성공적인 학문 분야로 성장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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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류학'이란?
그렇다면 정치 인류학은 무엇일까요?
정치인류학이란,
인류 사회에 역사적, 지역적으로 존재해 온 다양한 정치적 제도와 구조, 과정에 주목하면서 권력의 성격,
정치에서의 상징, 이데올로기의 역할 및 국가의 이미지, 작동 방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그럼 정치학과는 무슨 차이냐구요?
정치학과 정치인류학은,
국가 형성, 민주주의, 시민권, 권리, 개발 등의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정치인류학은,
공식적인 정치의 장을 넘어 비공식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며,
다른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과정과의 연관관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정치학과 구별된답니다.
조금 더 쉽게 우리가 아는 단어를 이용해서 말해보자면,
정치 인류학은, 민족지 연구가 좀 더 큰 정치 경제의 세계적, 역사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학문이에요.
특히나 연구 대상자들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큰 힘 혹은 외부의 힘이 침투하는 것을 재현하고자 하죠.
예를 들자면, 브라질 설탕 공장에서 노예로 일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라질에 어떤 외부의 힘이 침투했는지 알아 봐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 과정에서 ‘세계체제론(world system theory)’과 같은 정치 경제학적 관점을 결합시키기도 해요.
즉 정치 인류학은,
문화적 상황을 항상 유동적이고 지역적 맥락의 내부나 외부의 영향에 대한 저항과 적응이라는 역사적 상태로
보는 관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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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론(world system theory)'이란?
‘세계체제론’이 뭐길래 ‘세계체제론’과 같은 정치 경제학적 관점과 결합시키는지 궁금하셨죠?
잠깐 짚고 넘어가 볼까요?
‘세계체제론’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월러스타인이 정립한 이론이에요.
세계가 하나의 경제 틀(체제)에 묶여 있으며,
제 1세계와 제 3세계의 불평등이 중심부 – 반주변부 – 주변부 사이의 착취적이고 종속적인 관계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이에요.
중심부는 선진국과 같은 국가를 말하고, 주변부는 저개발 국가를 말해요.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반 주변부 국가랍니다.
그래서 중심부가 반주변부와 주변부를 착취하고,
반주변부가 주변부를 착취하는 시스템인거죠.
이런 착취적이고 종속적인 관계가 세계의 불평등을 만든다고 설명한 이론이
바로, ‘세계 체제론’이랍니다.
그러니까, 정치 인류학에서 세계 체제론을 결합해 보는 것은
연구 대상자들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큰 힘 혹은 외부의 힘의 침투하는 것을 고려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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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민츠(Sidney Mintz)의 <설탕과 권력>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학자는 시드니 민츠에요.
시드니 민츠는 음식 인류학과 역사 인류학을 공부했고,
푸에르토리코의 농민 연구, 자마이카, 아이티, 이란, 홍콩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했어요.
소개해드릴 학자가 정치 인류학자가 아니라서 조금 놀라셨죠?
하지만 시드니 민츠는 오늘 소개해드릴 책, <설탕과 권력>에서 역사 인류학적 관점과 세계의 정치경제적 체제를 잘 엮어 쓴 학자랍니다.
시드니 민츠는 <설탕과 권력>에서
설탕의 소비와 공급의 역사를 통해서 광범위한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의문은,
첫 번째,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설탕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중요한 상품이 되어
유럽인들을 사로 잡았는가?
두 번째, 단순한 공급 – 수요의 법칙이 아니라, 설탕에 대한 수요는 어떻게 자극하게 되었는가?
였죠.
유럽에서 설탕은 호사품으로 여겨졌었어요.
그러나 사탕수수 농장이 아메리카 대륙과 브라질 등지로 이전되었고, 유럽의 제국주의가 확장되면서는 식민지에 플렌테이션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공급이 증가해버린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공급이 증가하는 논리지만,
이번 경우에는 공급이 늘어나버린 탓에 수요를 강제적으로 증가시켜야만 하는 상황이 온 거에요.
그렇게 설탕의 수요층이 늘어나면서,
귀족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거랍니다.
이 사실을 보고 시드니 민츠는 ‘설탕 소비의 계급적 확대’를 비롯한 다양한 해석을 했어요.
저는, ‘세계체제론’과 연결 지어 짧게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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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특히나 백인 한 명을 유색인 두 명이 부축해주고 있는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앞서 얘기한 ‘세계체제론’과 연결 시켜볼까요?
세계체제론에는 '중심부 - 반 주변부 - 주변부'가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중심부 국가(유럽 국가)가 주변부/반주변부 국가를 착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착취적이고 종속적인 관계가 이들의 불평등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식민 착취를 통해, 주변부/반주변부의 착취를 통해 주변부/반주변부의 부가 아니라,
중심부의 부가 확대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주변부/반주변부의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일을 해도 돈을 벌 수가 없는 체계인거에요.
따라서 불평등은 계속해서 유지가 되는 거죠.
이처럼
시드니 민츠는 설탕이라는 물질과 소비를 세계체제의 정치경제학 안에서 설명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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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셨듯!
오늘의 추천 도서는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입니다.
앞서 제가 설명한 짤막한 내용 말고도 이 책에는 설탕과 관련되어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앞서 제가 짧게 설명한 설탕에 대한 역사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궁금하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늘 제 글이 조금 어렵진 않으셨을지, 걱정이 되어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찾아 뵐게요!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문인야학 필진
눈치 없는 새내기 😝
차분한 동기언니 😌
매사에 긍정적인 짝후배 🥳
인류학에 진심인 선배 🐯
착실한 꽥꽥조교 🦆
하고 싶은게 많은 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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